<본인 아님. 출처: 중앙일보>
2001년쯤인걸로 기억한다. 작은 광고회사에서 카피라이터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당연히 신입이다보니 카피라이터라는 직책답게 '카피(복사)'만 주구장창했다. 당시 광고 디자인 시안이라는게 외국 광고잡지 레퍼런스로 디자인 시안을 잡아 응용을 했던지라(모르겠다. 당시 대부분 광고회사가 이랬는지, 아니면 내가 들어간 회사가 그랬는지, 지금도 그러한지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지시에 따라 열심히 복사했던 기억들만 남아있다. ㅠㅜ
또, 전임 디자이너가 사용하던 애플 매킨토시를 나에게 넘겼줬다. 카피라이터는 다른 기능없이 텍스트만 쓸 수 있으면 되는거 아니냐는 논리로 이미 10여년 전에 생애 첫 애플 컴퓨터를 사용했었다. 당시 기억으론 한글변환도 이상하고, 마이크로소프트에 익숙해있었으니 너무 불편해서 애플이란 회사는 컴퓨터를 왜 이렇게 못 만들었나? 투덜투덜댔던 기억이...ㅎㅎ
(하지만, 정작 지금은 맥북프로로 이 글을 작성하고 있다. ^^)
입사한지 두 달만에 처음으로 광고회사 경쟁 프리젠테이션에 따라가게 됐다. 역할도 무지무지하게 중요한... '프리젠테이션 화면 넘기기'. 아직도 내 흑역사로 남아있는, 당일 아침 8시부터 긴장해서 딱꾹질을 오후 8시까지 꼬박 12시간을 쉬지않고 했다. 아마도 그때 한 딱꾹질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평생한 딱꾹질 횟수보다 많지 않나 싶다. 사실 당시를 떠올리면 매우 심각한 분위기였다. 새로 들어온 신입은 계속 딱꾹질을 하며 페이지도 제대로 못넘기지, 여하튼 인생에서 손에 꼽는 '식겁 베스트 3'에 드는 사건이다.
언제나처럼 서론이 길었다. 사실 블로그 포스팅 제목처럼 내가 '백전백승 이기는 프리젠테이션' 비결을 말할 처지는 아니다. 분명 이기는 경쟁 프리젠테이션 경험도 많고, 때론 관련 강의도 하곤 하지만 '백전백승'할만큼 뛰어나지도 않을 뿐더러 이기고 지는 건 여러가지 변수가 많기에 함부로 비결이라 얘기할 것도 없다.
하지만, 적어도 이 포스팅에서 말하고자 하는 건 이거다. 이기든 지든 프리젠테이션을 앞두고 기본 중에 기본으로 준비해야 할건 무엇인지 짚어보자는데 있다. 후배들을 위한 안내서 정도로 생각하면 좋겠다.
그럼 기본 중에 상기본 프리젠테이션 준비 7가지를 짚어보자면,
1. 질문을 두려워하지 말자
갑자기 정적을 깨고 회사 전화가 울린다. 막내 신입사원이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받고 안절부절하다 팀장에게 전화를 넘긴다. 팀장은 잠시 졸고 있다가 전화를 받았다. 제안 요청 관련 전화다. 몇 마디 얘기를 나누고 전화를 끊는다. 자~ 첫 통화에 확보해야 할 정보는 무엇인가?
우선 막내 신입이 받았다면 두려운 마음에 그냥 상사에게 넘겨버리면 안된다. 적어도 기본적인 정보를 파악한 후 넘겨야 한다. 특히나 상사가 부재 중이면 더욱 상세하게 질문해야 한다. 기본적으로 이름/회사명과 소속/연락처/이메일 주소/요청 내용을 파악한다. 또한 가능하다면 어떤 경로로 우리 회사로 연락을 하게 되었는지 파악하는 건 덤이다. 관련 정보를 빠르게 노트한 후 메일이나 문자로 외부에 있는 상사에게 전달하는게 필요하다.
초반 신뢰감은 매우 중요하다. "있으면 팔고, 없으면 못팔아요"라는 마인드는 이미 지고 들어가는 자세다. 선임자는 나이스한 톤앤매너로 재통화해서 상대방에게 프로페셔널한 모습을 보여주며 신뢰감을 확보해야 한다.
2.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 제안 요청서(RFP) 파악하기
전달받은 메일로 아마도 제안 요청서(RFP)가 올 것이다. 제안 요청서를 들여다볼 때 놓치지 말아야할 부분은 크게 2가지다. 하나는 요청 서류가 무엇인지 파악하기. 워드, 파워포인트, 한글 포맷 등 무엇을 요구하는지, 회사 증빙서류 등 제안서 외에 추가로 제출할 서류들이 있는지 확인하자. 둘째로 제안서에 들어갈 내용을 파악하자. 제안을 요청하게 된 배경과 해당 기업/브랜드/제품 관련해 우리가 제공하는 서비스를 통해 무엇을 얻고 싶어하는지 정확히 파악하는 게 핵심이다.
제안 요청서를 받아놓고 제일 답답한 상황은 우리끼리 예측하면서 회의하는 것이다. 보내준 문서를 해석(또는 해독)하면서 "이건 이런 의미가 아닐까?" 논의한다. 쓸데없는 시간 낭비다. 모르면 바로 즉시 해당하는 담당자에게 바로 전화해서 물어보는게 최선책이다.
3.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정보력을 동원해 분석하기
<GD 인맥만큼은 아니지만 찾아보면 우리도 제법 된다. 출처: 중앙일보>
나름 업계(광고 또는 PR 또는 온/오프라인 마케팅 에이젼서 등) 연차가 있다면 정보력을 동원해 파악해 볼 수 있다. 참여하는 비딩업체는 어디인지, 제안 요청한 부서 조직 구성원을 파악해보고, 최근 해당 부서 비즈니스 이슈가 무엇인지, 이번 제안에 드러내지 못하는 배경이 있는지도 알아볼 수 있다.(이 정도는 해줘야 경력직은 능력자로 인정받음 ^^)
한국이란 나라는 땅덩어리가 작은데다가 서울에 몰려있어 2-3단계만 거치면 해당 기업과 관련있는 사람을 찾을 수 있다.
그렇다면 인적 네트워크도 아직 구성되지 못한 주니어들은 무엇을 해야할까? 컴퓨터 앞에 앉아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이다. 당연히 기업 웹사이트를 들어가서 제품/서비스 기본 정보를 파악해야 하고, 최근 기사, CEO 인터뷰 또는 해당 부서장 인터뷰, 온라인 상에서 자주 등장하는 키워드(기업이 바이럴 작업으로 의심되어도 상관없다. 오히려 그게 기업의 메시지일 수도 있다), 경쟁사 움직임, 시장 규모 등을 정리해 보고한다. 여기서 핵심은 빠른 보고이다. 구체적인 분석은 제안서 작업 시 다시 고민하면서 서로 논의해야겠지만, 먼저 제안서 회의를 하기 전 기본적인 정보를 빠르게 정리하는게 필요하다. 이게 주니어의 능력이다.
4. 제안서에 왕도는 없겠지만 그래도 기본기는 있다
제안서 잘쓰는 법은 시중에 많은 자료가 있다. 관련 팁들은 그런 자료를 찾아보는게 도움이 된다. 이번 포스팅에서 내가 강조하고 싶은 건 제안서에 꼭 들어가야할 기본에 대한 부분이다.
제안서 어느 한 구석이라도 제안요청서(RFP)에 언급한 표현(워딩)들이 들어가줘야 한다. "난 여러분의 고민을 이해하고 있어요"라고나 할까? 그들이 간지러워 하는 부분을 긁어줘야 한다. 또한, 제안서 흐름이 맞아야 한다. 기껏 우리의 컨셉과 전략이 이렇다라고 멋지게 논리적으로 풀었는데 프로그램은 전혀 앞에 전략과 상관없는 내용이 담겨있다면...모르겠다. 프로그램이 좋아서 오케이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겠지만, 내 생각엔 잘 만든 제안서는 아니다.
분석에 너무 공을 들이지 말자. 사실 그들이 더 많이 알고 있다. 프리젠테이션할 때 그게 새로운 내용인 것 마냥 장황하게 설명하면 보통 이런 반응이다. "아 예, 알겠고요. 그래서 전략이나 프로그램으로 넘어가주시죠." 분석이 의미 없다는게 아니다. 누구나 파악할 수 있는 현상을 이야기하는게 아니라 그 현상이 갖고 있는 의미를, 말 그대로 '분석'해서 접근해야 한다. 하지만 그게 어렵다면 현실적으로 분석을 최소화해라. "저희가 여러분 회사를 알고 있어요. 이번 과제가 무엇인지 충분히 인지하고 있어요." 정도로 보여주자.
(노파심에 첨언하자면 분석이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님. '분석'을 하려면 잘해야 한다는게 핵심 메시지 ㅎㅎ)
끝으로 태양 아래 새로운게 없는건 다 안다. 그래서 태양 아래 새로운 제안서도 없다. ㅎㅎ
컨트롤 C와 V를 열심히 활용한 제안서라도 기본적으로 마지막엔 컨트롤 F(Find)를 잊지 말자. 생뚱맞은 타기업 브랜드가 제안서에 등장할 경우 신뢰감은 현저히 떨어진다.
(다들 스스로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자. 이런 사소한 실수로 낭패를 본 기억이 없는지...)
5. 제안서 완성은 항상 쫓긴다. 그게 정상이다
<flickr @Michael Coghlan>
시간이 부족하든 충분하든 항상 제안서 작업은 쫓긴다. 그럼 프리젠테이션 현장에서 놓치지 않기 위해 사전에 체크할 건 무엇일까? 노트북 사용가능 여부(기업 보안강화로 노트북이나 저장장치 사용이 불가한 기업이 있음), 상황에 따라 인터넷 사용 가능 여부, 몇 명이 참석하는지(이왕이면 참석자 직책이나 의사결정권자 이름 파악도 필요), 제본은 컬러/흑백 몇 부 준비할지, 사전등록절차가 있는지(주차 및 참석자 관련해) 사전에 파악한다. 이런걸 누가 체크해야 할까? 당연히 쥬니어가 확인해야 한다.이런 것만 잘해도 일 잘하는 쥬니어 ㅎㅎ
(센스있는 쥬니어는 시니어 명함도 몇 장 미리 챙겨놓는다. 시니어가 깜빡있고 명함을 놓고 올 경우를 대비해서...의외로 이런 경우가 제법 많음 ㅎㅎ)
그 밖에 프리젠테이션 당일 프린트를 하게 될 경우 보통 시간이 촉박하다. 컬러 인쇄라면 더더욱 그렇다. 따라서 제본에 걸리는 시간을 머리속에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한다. 상황에 따라선 인쇄 퀄리티가 떨어질 순 있어도 '복사'가 더 빠를 수 있다. 그냥 팁이다.
6. 프리젠테이션 장소 도착은 못해도 20분 전엔 도착하기
변수는 항상 존재한다. 멀쩡하던 컴퓨터가 갑자기 안돌아가거나, 영상이 재생이 안되거나, 와이파이가 잡히지 않아 시연이 불가능해지거나...이런 이슈를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사전에 프리젠테이션 장소에 도착해야 한다.
준비를 마치면 컴퓨터 세팅은 '잠자기 모드'는 꺼놓고, 보안이나 업데이트 관련 팝업도 모두 차단해놔야 한다. 프리젠테이션 진행 시 종종 보게 되는 실수(?)로는 메신저다. 인터넷이 연결된 상황일 경우 페이스북이나 메신저 알림이 뜨면 흐름이 끊긴다. 주의해야 한다.
또한, 차를 가지고 간다면 주차하는 시간과 방문등록하는 시간까지 계산에 넣어야 한다.
끝으로 개인차는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당일 커피를 많이 마시면 카페인 때문인지 컨디션이 둥둥(?) 들떠 있어서 집중력이 떨어지고, 탄산음료를 마시면 그에 걸맞는 생리현상(?)이 일어난다. 개인적으로는 물이 가장 쵝오!
7. 프리젠테이션 현장은...이제 당신 몫이다
이건 알아서들 하시라. 많은 프리젠테이션 책을 보면 방법론을 제시하지만 그걸 소화하는 건 당신 몫이다. 집에 스티브 잡스의 프리젠테이션 서적을 포함해 대략 10여권 이상의 프리젠테이션 관련 책이 있지만 난 여전히 '스티브 잡스'처럼 하지 못한다.
그나마 개인적으로 맞아서 자주 사용하는 방법은 방송 프로그램 MC들이 보는 진행 큐시트처럼 종이를 4등분해서 프리젠테이션 장수에 맞게 주요 키워드 중심으로 적어놓은 후 반복적으로 읽는다. 내가 입으로 언급해봐야지 실제 현장에서도 그 단어가 나오는 걸 경험해봤기에....
물론 실제 프리젠테이션 발표 시에는 종이를 들고 있지 않는다.
여하튼 1~6번까지는 누구라도 시키면 할 수 있는 기본적인 것들이다. 7번은 개인 능력차가 있을 수 있겠지만 나머지는 제대로 인지만 하고 있으면 된다. 프리젠테이션을 앞두고 이 정도도 하지 않는다면 직무유기다.ㅎㅎ 7번은 알아서 해결하시길. 건투를 빈다.
'H_Think' > Coaching ON-AIR' 카테고리의 다른 글
피드백이 없다면 당신의 자리는 위태하다 (0) | 2015.06.11 |
---|---|
크라브 마가로 보는 기업 위기관리 고찰 (0) | 2015.06.08 |
독을 품은 질문, 미래를 품은 질문 (0) | 2014.10.14 |
10월 1일, 새롭게 출발합니다. (0) | 2014.10.01 |
[Interview] "난 코칭을 통해 하고 싶은 것과 잘하는 것을 좁히고 싶다" (0) | 2014.10.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