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lickr : http://bit.ly/1GuhbSf>
#1 외진 골목길을 걷고 있다. 교복을 입진 않았지만 얼추 고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3-4명의 무리가 담배를 피고 있다. 눈을 깔고 빠르게 지나가는데 따라오는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 뒤를 힐끗 보면서 그들의 손을 보니 뒤로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 갑자기 전화가 온 것처럼 둘러대면서 빠르게 뛰어 현장을 벗어난다.
#2 직장 동료들과 2차로 포장마차를 왔다가 옆 테이블과 시비가 붙었다. 상황이 좋지 않다. 상대방은 성인 남자 4명, 우리쪽은 남자 2명 여자 2명이다. 대화가 점점 거칠어지고 있다. 남자로써 자존심은 지켜야 하지만 잽싸게 계산을 하고 무리를 이끌고 자리를 피한다.
#3 가족과 함께 광화문 광장에 놀러왔다. 세종문화회관 앞을 가기 위해 신호등에 서있는데 갑자기 옆에 사람이 오더니 만원만 달라고 요구한다. 술냄새가 진동한다. 내가 언짢은 얼굴을 했더니 갑자기 위협적으로 바뀌면서 점퍼 안주머니에 손을 넣고 무언가를 꺼내는데 나무를 깎아 만든 뾰족한 위협물이다. 레귤러 홀드(또는 '얼음송곳' 쥐기) 포지션으로 갑자기 위협물로 위에서 아래로 찌른다. 전완 디펜스(forearm defense)를 하며 공격자의 어깨 너머로 손을 넘기면서 동시에 스트레이트 펀치를 치고, 바로 연결해 낭심을 걷어찬다. 그리고, 가족과 함께 있어 2차 공격을 피해야 하기에 위협물을 빠르게 빼았는다.
<Image Source : http://bit.ly/1cFRwYM>
위에 상황은 각기 다르지만 궁극적으로 크라브 마가가 지향하는 방향이다. 크라브 마가는 상대를 제압하는 게 목적이 아니라 최대한 상황에서 벗어나는게 핵심 포인트이다. 아직 직접 공격을 받지 않았다면 빠르게 판단해 현장을 벗어나는 게 중요하며, 불가피하게 디펜스가 필요한 시점일 경우 즉시 상대의 공격을 방어하고 상황을 해결하는게 필요하다.
최근 수련하고 있는 이스라엘 특공무술이라 불리는 '크라브 마가(히브리어로 근접 격투라는 뜻)'는 원래 이스라엘 군을 위해 개발되었지만 이젠 일반인 대상으로 누구나 위기 시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기 위해 최적화되어 왔다.
특히, 영화 본 시리즈나 원빈 주연의 '아저씨' 등에서 선보인 크라브 마가로 사람들이 오해를 하고 있는데, 다시 강조하지만 크라브 마가는 상대를 제압하는 게 목적이 아니다(현실적으로 17대 1 상황이면 무조건 도망가야 하지 않겠나 ㅎㅎ).
서론이 길었다. 크라브 마가를 배우면 배울수록 개인/기업 위기관리 프로세스와 매우 흡사하다는 걸 깨닫고 인사이트를 얻고 있다. 몇가지 정리해서 생각해보면,
1. 스캔(scan), 스캔, 스캔이 가장 먼저 되어야 한다.
크라브 마가는 실전 격투술이다. 태권도나 복싱, 이종격투기와 같이 심판이 있고 상대의 움직임을 비교적 손쉽게 지켜볼 수 있는 링 위의 대결이 아니다. 360도로 갑자기 뒤에서 적이 침입할 수도 있고, 공격자가 한 명이 아니라 두 명, 세 명이 될 수도 있다.
기업이 닥치는 위기도 이와 같다. 정확히 말하자면 '위기' 전 단계인, 아직 위기가 수면 위로 올라오지 않은 '이슈' 단계에서 우리는 기업에 위협이 되는 상황들을 파악하기 위해 끊임없이 360도로 '스캔'해야 한다. 보통 '모니터링'이란 개념이 이와 유사하다. 온라인 상에서 실시간으로 발생하고 있는 다양한 이슈를 찾아내고 적절한 대응을 하기 위해선 '모니터링'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이미 해외는 말할 것도 없고 국내 대기업들 역시 이제 당연스럽게 모니터링 솔루션을 구축해놓고 있다.
2. 날아오는 주먹을 보면서 생각할 시간은 없다
실제 상황은 자주 접하는 액션 영화처럼 주인공을 위해 슬로우 모션으로 보여주지 않는다. 날아오는 주먹을 보면서 오른손으로 막을지 왼손으로 막을지, 막고나면 스트레이트를 뻗을지 중심을 잃도록 밀어낼지 고민하지 못한다. 위기는 실시간, '리얼타임'이다. 기업에서 발생하는 위기도 이와 동일하다. 특히 이제 소셜미디어로 인해 확산속도는 따라잡기 힘들 정도로 순식간이다.
3. 실제 상황처럼 급소를 걷어차야 한다
크라브 마가 트레이닝을 할 경우 낭심 보호대와 헤드기어를 쓰고, 마우스피스도 물고 하는 경우도 있다. 왜냐하면 실전처럼 훈련하기 때문이다. 낭심을 차는 척만 하게되면 실제 위기 시에도 '차는 척'만 하게되는 코메디같은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기업도 실제와 같은 위기 시나리오 워크샵 또는 위기 시뮬레이션 훈련 등을 통해 실제 상황에서도 그대로 대응할 수 있도록 준비되어야 한다.
실제로 몇 몇 기업들은 공장에 사전 고지없이 기자를 사칭에 전화를 하거나, 공장 정문에 피해자를 가장한 사람들을 보내는 등 위기 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시나리오를 토대로 실제처럼 담당자를 테스트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교육이 제대로 된 학습효과를 유도할 수 있다.
4. 반복 학습은 이성을 본능처럼 제어하게 만든다
초등학교 시절 교통사고 경험이 있다. 택시에 치였는데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오고 있는 택시를 피하지 못하고 '얼음'이 되서 고스란히 택시를 '엉덩이'로 받아들였던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극단적인 예로 우리가 평상시 택시를 피하기 위한 연습을 할 필요는 없겠지만 '묻지마 범죄'가 기승을 부리는 요즘, 개인 신변의 위협은 언제든 찾아올 수 있는 위험한(?) 세상에 살고 있다. 몸이 기억할 수 있도록, 본능적으로 위기를 뛰어넘을 수 있는 힘은 결국 반복 학습이다.
기업도 동일하다. 반복...반복...지루하더라도 반복학습이 필요하다. 개인이나 기업이나 '왕도'는 없다. 반복된 경험이 뇌를 자극하고 우리를 움직이게 한다.
5. 기본 원리를 알면 응용이 가능하다
어디를 가든 기본기를 강조한다. 특히, 스포츠에선 더욱 그렇다. 해외 유명한 유소년 축구클럽들이 초기에 기술적인 훈련보다 기본동작을 제대로 익히는데 초점을 맞추는데는 다 이유가 있다. 제대로 된 기본을 갖추면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응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크라브 마가도 360도 방어나 공격 시에도 항상 습관처럼 안면을 가이드하도록 교육시키는 것도 그렇고, 근접 격투 후 왼쪽/오른쪽/등 뒤를 빠르게 스캔하는 습관하도록 가르치는 것도 이런 기본 원리 안에서 다양한 상황에 놓였을 때 응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기업이 위기관리 매뉴얼을 갖추거나, 위기 대응 프로세스를 갖는 것도 마찬가지다. 기본 원칙 안에서 다양한 위기 관리 변주가 가능하다. 특히나, 소셜미디어로 인해 '실시간 대응'을 요구하는 요즘엔 더욱 그렇다.
자유롭게 형식없이 피아노 연주를 하는 것처럼 보이는 재즈 피아니스트와 3살짜리 아이가 피아노에서 건반을 누르는 행위가 같다고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열심히 훈련해야겠다. '크라브 마가'도 '위기관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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